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자질, 표현력과 이해력
몇 년 전 소믈리에 자격증을 딸 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엔 그냥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지나고 보니 이 말을 해준 교수님의 전공이 기호학이었다는 게 우연이 아니었다. 혀로 느낀 맛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이다. 그 감각 자체는 아무리 예민해도 남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되는 건 그 감각을 언어라는 기호로 바꿔낸 결과물뿐이다. 그러니까 소믈리에의 실력은 "느끼는 능력"이 아니라 "번역하는 능력"이었던 셈이다.
AI 앞에서 우리 모두가 소믈리에가 됐다
요즘 AI를 쓰면서 이 말이 계속 떠오른다. AI 시대에 정말 중요한 능력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AI가 한 말을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이해력이다.
이 둘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난이도가 다르다. 이해력 문제는 사실 어떻게든 우회할 방법이 있다. AI에게 "더 쉽게 설명해줘", "예를 들어서 말해줘"라고 요청하면 난이도를 낮출 수 있다. AI는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다르게 풀어서 설명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표현력은 다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의도, 이미지, 뉘앙스를 AI가 오해 없이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내는 일은 상대방이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마치 와인을 마시고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순간처럼, 우리는 매번 머릿속의 감각을 언어라는 기호로 압축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는다.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이런 느낌인데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던지고 AI가 되물어오게 만드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건 마치 와인 시음회에서 "떫으면서도 산미가 도는 이 맛, 전문 용어로는 뭐라고 하나요?"라고 소믈리에에게 되묻는 것과 비슷하다.
표현력의 뿌리는 결국 어휘와 문장이다
다만 대화로 표현력을 벼려낼 수 있다는 건, 애초에 손에 쥐고 있는 단어와 문장의 재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느낌"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느낌에 가까운 단어 후보 자체를 몇 개 알고 있느냐가 대화의 질을 가른다. 이 재고는 대화만으로는 잘 안 쌓인다. 다양한 어휘와 문장 구조, 낯선 비유를 몸에 새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이다. 결국 AI에게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의 밑바탕에는, 평소에 얼마나 많은 글을 읽어서 언어의 재료를 쌓아왔느냐가 깔려 있는 셈이다.
이해력은 결국 태도의 문제다
이해력 쪽도 마찬가지로 손쉬운 우회로 뒤에 진짜 숙제가 남아 있다. "더 쉽게 설명해줘"라고 요청해서 난이도를 낮출 수는 있지만, 그렇게 받은 쉬운 설명조차 흘려듣고 넘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AI가 하는 말을 진짜로 이해하려는 태도, 즉 그럴듯해 보이는 답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게 정말 맞는 말인가", "내가 놓친 전제는 없는가"를 한 번 더 붙잡고 씹어보는 자세가 없다면, 아무리 쉬운 설명을 받아도 이해력은 늘지 않는다.
결국 언어로 돌아온다
돌이켜보면 소믈리에 교수님의 말은 와인 이야기가 아니라 언어 이야기였다. 어떤 분야든 전문성의 최종 관문은 감각이 아니라 그 감각을 옮기는 언어에 있다는 것.
평소에 책을 읽으며 표현의 재료를 쌓아두는 것, 그리고 AI의 답을 흘려듣지 않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소믈리에가 되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