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드롬, 그리고 아이폰이 가르쳐준 것들

AI와 스마트폰의 정체기를 나란히 바라보는 블로그 캐릭터
이 글의 대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

요즘 나는 새로운 AI 모델이 나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출시 소식을 기다리고, 나오면 바로 써보고, 예전 모델과 비교해본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폰 3GS 시절, 다음 세대 아이폰에 어떤 기능이 들어갈지 궁금해하며 발표를 기다리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안 되던 것이 되는 순간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설렘은 점점 줄어들었다.

눈에 보이던 성장의 시절

그때는 하드웨어가 눈에 띄게 좋아지던 시기였다. 카메라 화소가 오르고, 속도가 빨라지고, 화면이 선명해졌다. 세대마다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다.

AI도 비슷했다. 챗GPT가 처음 나왔을 땐 텍스트만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미지를 읽기 시작했고, 곧 이미지를 만들었고, 이제는 영상까지 만든다. 안 되던 것이 되는 순간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충분함의 경계선

그런데 스마트폰은 어느 순간부터 신제품이 나와도 예전만큼 설레지 않게 됐다. "전작보다 성능이 40% 향상됐다"는 광고를 봐도 무덤덤하다. 이미 있는 기능을 더 잘하는 것뿐, 없던 게 새로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일상적인 사용에 성능이 차고 넘치니, 발전은 계속되어도 체감은 점점 줄어든다.

AI도 지금 이 경계선에 서 있는 것 같다. 최근 나온 Fable 5.1이나 GPT-6 Astra는 분명 뛰어난 모델이다. 한동안 신나게 써봤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현타가 왔다.

내가 하던 작업 대부분은 이전 모델, 심지어 그 이전 모델로도 충분했다. 벤치마크 점수는 계속 올라가는데, 정작 내 작업에서는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상위 모델을 쓰면서 사용량이 더 빨리 줄어드는 부담도 느꼈다. OpenAI는 ChatGPT Work·Codex에서 GPT-6 Astra가 GPT-5.6 Sol보다 포함된 할당량을 더 빨리 쓸 수 있고, 실제 사용량은 작업과 설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안내한다.

다만 이게 AI 전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텍스트 작업 같은 영역은 이미 "충분함의 영역"에 들어섰을 수 있지만, 컴퓨터를 스스로 조작하는 에이전트 작업이나 영상 생성 같은 영역은 아직 안 되던 게 되는 성장 단계다.

그러니 AI 전체가 한꺼번에 정체기에 들어선 게 아니라, 작업의 종류마다 각자 다른 속도로 그 지점에 다가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성능 대신 폼팩터를 바꾸기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다. 스마트폰은 이 정체기를 돌파하려고 폼팩터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폴더블, 슬라이드처럼 기존 틀을 깨는 시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칩 성능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니, 형태 자체를 바꿔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는 것이다.

AI도 앞으로 비슷한 시도를 할 것 같다. 이미 조짐은 보인다. 하나의 거대한 모델이 모든 걸 처리하는 대신, 여러 모델이 역할을 나눠 협업하는 구조가 늘고 있다. 채팅창이라는 틀을 벗어나 컴퓨터를 직접 조작하거나, 브라우저에 상주하거나, 항상 켜진 채로 배경에서 일하는 에이전트도 등장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축은 기억이다. 매번 대화가 리셋되는 모델이 아니라, 나에 대한 맥락을 계속 쌓아가는 시스템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물론 이 시도들이 다 성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폴더블이 아직 대세로 자리 잡지 못했듯, AI의 새로운 폼팩터들도 시장에서 검증받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지금의 생각
그래서 나는 이제 성능 수치보다 이 지점을 더 흥미롭게 지켜보려 한다.

다음 모델이 벤치마크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AI가 스스로의 틀을 어떻게 깨려고 하는지 말이다.

아이폰이 폴더블로 답을 찾아가고 있듯, AI도 언젠가 지금의 채팅창을 완전히 벗어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 변화를 가까이에서 먼저 지켜보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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