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가 사라진 후에 올 것들
테슬라가 2024년 10월 사이버캡을 공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소식보다 먼저 오늘 아침의 올림픽대로를 떠올렸다.
핸들도 페달도 없는 차라니 —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사실 나는 이미 그 비슷한 걸 매일 경험하고 있다. 완전한 자율주행은 아니지만, 반자율주행이라는 이름의 작은 자유.
남양주에서 직장까지, 편도 한 시간 반. 처음엔 그저 견뎌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길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올림픽대로에 들어서서 반자율주행을 켜면, 앞차와의 간격도 차로도 알아서 유지된다. 이제는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필수적인 기능이 되었다.
장거리를 갈 때도 이 기능을 켜두면 운전 피로도가 확연히 줄어든다는 걸, 나는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이것마저 필요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막연한 상상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테슬라가 운전대도 페달도 없는 택시, 사이버캡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버려지던 한 시간 반이 내 시간이 된다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외로 소박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납해야 했던 그 한 시간 반이, 더 이상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장거리 출퇴근도 할 만하지 않을까."
부모님의 이동권, 아이들의 등하굣길
그러다 문득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다. 요즘 농촌은 고령화가 심각하다. 그런데 여기엔 묘한 딜레마가 있다. 나이가 들면 운전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은 점점 강해지는데, 정작 농촌에서는 차가 없으면 이동의 자유 자체가 사라진다. 대중교통이 도시처럼 촘촘하지 않으니까.
만약 마을 단위로 돈을 모아 사이버캡을 함께 쓰는, 일종의 '사이버캡 품앗이'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대중교통이 촘촘하지 않은 곳에서도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이동을 지원하는 방식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의 등하굣길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의 안전성만 확실히 보장된다면, 맞벌이 부모가 아침저녁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픽업과 픽아웃을 반복할 필요도 없어진다.
노인의 이동권과 아이의 통학,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두 문제가 결국 같은 기술 하나로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도 먼저 짚어야 할 안전
물론 이 모든 상상에는 어두운 면도 함께 따라온다. 특히 안전 문제는 가장 먼저, 가장 무겁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시스템 오류,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생명을 맡긴다는 것. 이 우려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자율주행이 가져다줄 사회적 편익이 그 위험을 상회할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왕복 세 시간을 도로 위에서 흘려보내던 나에게 돌아올 시간, 운전을 그만둬야 할지 갈등하는 부모님 세대에게 주어질 이동의 자유,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를 픽업하던 부모들에게 생길 여유.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만들어낼 사회적 파장은, 아마 우리가 지금 그리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덧붙임 · 2026년 9월 27일: 이 글을 확인하는 현재, Tesla FAQ는 사이버캡 탑승이 텍사스 오스틴의 제한된 지역에서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이는 한국 농촌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이 글의 '사이버캡 품앗이'는 여전히 가정에 기반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 출퇴근길, 부모님의 노후, 아이들의 등하굣길까지 — 우리 삶 구석구석을 다시 짜는 힘이 담겨 있었다.
운전대가 사라진 자리에,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이 채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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