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가득한 세상, 인간은 무엇을 할까
AI가 사무실 일을 대신하고, 로봇이 몸을 쓰는 일까지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돈, 신용, 월급 같은 것들은 사실 "일해야 먹고 산다"는 전제 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 그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그러면 실업이 늘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던 규칙을 통째로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누가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는가"가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 중 하나였는데,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의미 있는 일
첫째, 돈이 안 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사람은 먹고살 걱정이 없어져도 "내가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했다"는 느낌 없이는 오래 못 버틴다.
그림을 그리거나, 연구를 하거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처럼 효율만으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일들이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로봇이 뭐든 다 만들어주는 세상에서는 거꾸로 "사람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 더 귀해질지도 모른다.
즐거움과 자극
둘째, 즐거움과 자극을 좇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옛날 귀족들이나 지금의 부자들이 그랬듯, 일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은 노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힘들게 우주로 나가는 것보다, 뇌를 자극하거나 가상 경험을 즐기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크다. 몸을 던져 미지의 세계에 부딪히기보다, 편하게 앉아서 자극을 즐기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가상 세계
셋째, 가상 세계로 옮겨갈 수도 있다. 현실은 자원도 한정되어 있고 물리 법칙에도 갇혀 있지만, 가상 세계는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정복하고 싶은 마음, 새로운 걸 개척하고 싶은 마음도 이 안에서는 더 자유롭게, 어쩌면 더 과감하게 풀어낼 수 있다. 진짜 우주로 나가려면 돈과 기술이 있는 소수만 가능하지만, 가상 세계는 훨씬 많은 사람이 실제로 발 들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다르다.
자기 자신을 바꾸기
넷째, 사람 자신을 바꾸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밖으로 나가 정복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내 몸의 한계나 수명, 죽음 같은 것 자체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다음 목표는 저 멀리 우주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
판을 누가 짜느냐
다섯째, 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힘겨루기가 남아 있다. 앞의 네 가지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의 문제라면, 이건 "그걸 할 수 있게 판을 누가 짜느냐"의 문제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시대가 끝나면, 결국 로봇과 AI,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자원을 누가 갖고 있느냐가 진짜 힘이 된다. 이 힘이 소수에게 몰리면 대부분의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고,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있다면 사람들의 욕망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사실 이 다섯 가지가 딱 하나씩 골라서 벌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하고,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좇고, 또 어떤 사람은 가상 세계로 들어가는 식으로 여러 선택지가 동시에 섞여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솔직한 태도는 성급하게 답을 정하기보다, 이 질문을 물음표로 남겨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답을 내려버리면 생각이 거기서 멈추지만, 물음표로 두면 계속 다른 각도로 다시 물어볼 수 있으니까.
결국 그 풍요를 어떻게 나누고 누가 쥐고 있느냐에 달린,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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