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AGI라는데, 옆자리 동료는 "잘 하네요"만 말했다
옆자리 동료가 ChatGPT에게 엑셀 분석을 시키고 보고서 초안을 뽑았다. 그리고 한 말은 딱 이거였다.
감탄도 걱정도 없이 그 한마디로 끝났다. 그 이상의 질문도, 그 이하의 실망도 없었다. 마치 복사기가 제대로 복사했을 때 하는 말과 비슷한 온도였다.
같은 시각 SNS 타임라인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새 모델이 나왔다고, 몇 년째 못 풀던 버그를 찾았다고, 인간도 못 낸 증명을 해냈다고, 이제 진짜 AGI라고, 사무직은 곧 끝난다고 다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노트북을 덮고 사무실을 둘러봤다. 종말을 앞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냥 PPT를 만들고, 메신저로 점심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능력이 아니라 필요의 문제
이 간극을 처음엔 격차로 읽었다. 개발자인 나는 신모델이 나오면 일단 코드에 물려보고 뭐가 달라졌는지 확인하는데, 저 동료는 왜 그렇게 안 할까 하고.
그런데 다시 보니 그 동료가 시킨 작업 자체가 원인이었다. 엑셀 분석, 보고서 초안, 이메일 문구 다듬기 — 이 정도는 몇 세대 전 모델로도 이미 충분했다. 그러니 신모델이 나온다고 그 사람의 하루가 달라질 이유가 애초에 없었다.
병목은 모델 성능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능력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에 그 이상이 필요 없는 거다.
식욕 있는 소수는 바이브 코딩으로 뭔가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마 열에 하나도 안 될 거다. 이건 통계가 아니라 내 SNS와 사무실에서 받은 인상이다. 대부분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로도 하루가 문제없이 굴러간다.
내 타임라인에서 AI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표본이 편향된 탓일 수 있다. 내가 보는 피드에는 얼리어답터나 개발자, AI 콘텐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피드만으로 일반적인 사용 패턴을 대표할 수는 없다. 확성기를 든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침묵을 덮는 것처럼 느껴진다.
천장과 바닥
그래서 SNS의 찬양과 사무실의 "잘 하네요"는 모순이 아니다. 둘은 같은 걸 다른 높이에서 보고 있을 뿐이다.
찬양은 기술의 천장이 얼마나 치솟았는지를 말하고, "잘 하네요"는 대부분의 사람이 딛고 선 바닥이 조금도 안 움직였다는 걸 말한다. 천장이 오른다고 바닥이 저절로 따라 오르지는 않는다.
두 층은 같은 건물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산다. 위층에서는 매달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아래층에서는 작년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위층 사람들은 아래층이 곧 무너질 거라 말하고, 아래층 사람들은 위층에서 뭐가 무너진다는 건지 감을 못 잡는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새로운 가능성을 크게 말했지만, 그 변화가 일상의 습관으로 스며드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기술 전환에 늘 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통계가 아니라 내가 떠올리는 비유다. 그 사이에도 사람들은 매일 점심을 먹고 퇴근을 했고, 회사는 여전히 회의를 하고 결재를 올렸다.
기술의 발전 속도와 삶이 체감하는 속도는 애초에 다른 시계로 간다. 하나가 초 단위로 갱신될 때, 다른 하나는 계절 단위로 겨우 움직인다.
엑셀을 잘 다루는지, 신모델 이름을 아는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지금의 평온함이 무서운 건 위험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평온함과 위험을 구별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니면 이번엔 정말 다른지,
나는 아직 답을 못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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